아 졸리다. 아무 생각도 나지않는다.
이렇게 살다가..죽는 거지..라는 생각. 루저스럽고 패배적이라고 하기엔 뭐한게 이렇다 저렇다 도전했다고 확실하게 말할 게 있냐는 것이야. 시간은 일초 이초 흐르고 벌써 오늘이 수요일이고 잠시 뒤면 주말이야. 7월도 다 가버렸군. 이런 것들은 밝힐 필요가 없는 너무나 자명한 사실에 속하지. 시간말이야. 그런데 우울해하거나 절망적인 무력감의 이유가 뭐냐 이건데 답이 없다는 얘기겠지. 답이라고 생각해봤자 정확성은 보장할 수 없어.
그러니까 루저근성이 생기는 이유나 원인이 확실하지않다. 근거도 불충분해. 찾을 길이 없기 때문이다. 수치로 잴 수 있는 증거들. 다시말해 확실한 것들이 지닌 속성위에 근거들을 억지로 모아본다면 '얼마 기간의 백수, 몇 권의 책, 몇 편의 영화와 예금 잔고' 따위이다. 이것들을 좋고, 싫은 느낌대로 분류하면 나의 좌절에 대한 이유가 밝혀질까?
아니 좌절이라고 나에게 지시하는 주체가 '내'가 맞는 걸까?
적극적으로 사는 삶에 대한 태도가 있어. '너 잘 살고 있니? 잘 사니? 잘 지내?' 이런 인사치례를 듣곤 하면 늘 그렇듯, '어 그럭저럭, 어 뭐 그렇치' 라고 기계적으로 대답하곤 하는 데 이게 정말 내가 하는 말일까? 사회적으로 통념상 주고 받는 말같아서 낯설고 어색하더라고.
적극적으로 사는 것이 그렇다고 루저근성에 반댓말은 아니겠지. 그냥 살아있으니까 사는 것 뿐이야. 그렇잖아. 뭐 돈을 위해 살거나 신념을 위해서거나 적극성은 없어서는 안되겠지.
하지만 오랜 세월을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고 반대에도 뜻을 굽히지않은 사람들을 접하면 그들의 미래가 괜찮게 보이기까지해. 최소한 결실을 볼 거라는 거. 그 결실로 말미암아 마지막 순간이 찾아올 때 그가 남긴 것들이 그 누군가가 이어받을 거라는 거.
그가 남기고 간 것들이 존재감으로 드러나고 바로 그가 증명될 것이라는 거지. 현재는 알 수 없는 거야. 예를 들어 평생을 아나키한 삶을 사는 사람이 받은 어려움과 고통이 없을 수 없는데 그런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현재싯점으론 명확하지 않지. 착한 사람? 아나키한 사람? 문화적인 사람? 사기꾼?
언젠가는 자기를 부정하거나 역행할 수 있을 가능성? '미래'를 알 수 없기 때문이 하는 말이 아니야. 오히려 미래보단 현재를 알 수 없어. 현재가 불확실하고 불명확해.
살아있으니까 사는 거야. 사는 건 그냥 사는 것이 아니지. 인간이 사는 삶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로 지적인, 정신적인, 영적인, .... 문화적이고 창의적인 뭐 그러니까 인류학적인 관점에서 인간 활동의 다양성이 종류별로 각 사람 모두에게 마치 칩처럼 조금씩 내장돼있다. 거지든 아프리카 미개인이든.. 뭐든..
이런 보편성을 배제하는 것들에 저항하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들어내는 사람들이 있어. 인간사회가 사람들을 좀 먹는 건 확실하지. 적극성이 필요해. 그렇게 사는 거야. 어쩔수 없이..이렇게 사는 게 잘 사는 거란 말이다. 그리고 현재가 불확실 하게 보이고 원인을 찾을 수 없는 이유는 인간이 지닌 보편적으로 부여된 가능성이(다양성) 사회적으로 규제받고 억압하기 때문이고 (당신이 잘 발달 된 특징들이 당신이 원하는 거야?) 현재를 살아가려고 자기 자신이 근본적으로 해야할 것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야. 방해받지. 방해하는 세상. 마치 안개 낀 장충당 공원을 휘휘 저으며 걷는 병신같은 모습인데 사람들은 이게 정상적이고 당연한 삶이라고 얘기들 하지. 그렇게 못살면 실패한거라고 까지 하잖아?
웃끼지..웃껴.
현재가 불확실하게만 보인다는 모순적인 생각, 삶이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기준은 한마디로 타자화되있다는 거지. 자신과는 상관없는 이야기이야. 내가 왜 절망해야하는 건데? 아무것도 하지않는 것이야 말로 죄악이나 마찬가지이지. 알면서 하지않은 것 말이야. 기만적인 것은 조종당하는 삶여서 안타깝다.
현재싯점으로도 어떤 인간인건지 불분명하다는 말은 지금 세상을 뭐라고 규정할 수 없기 때문이야. 늘 변한다는 얘기가 아니라, 이런 세상으로부터 영향받지 않은 인간이 누가 있겠어. 조금 덜 받고 많이 받고의 차이겠지. 누구나 지금 영향아래 살고 있잖아. 그래서 그래.
[monolog] - 나를 방해하는 것들..
이렇게 살다가..죽는 거지..라는 생각. 루저스럽고 패배적이라고 하기엔 뭐한게 이렇다 저렇다 도전했다고 확실하게 말할 게 있냐는 것이야. 시간은 일초 이초 흐르고 벌써 오늘이 수요일이고 잠시 뒤면 주말이야. 7월도 다 가버렸군. 이런 것들은 밝힐 필요가 없는 너무나 자명한 사실에 속하지. 시간말이야. 그런데 우울해하거나 절망적인 무력감의 이유가 뭐냐 이건데 답이 없다는 얘기겠지. 답이라고 생각해봤자 정확성은 보장할 수 없어.
그러니까 루저근성이 생기는 이유나 원인이 확실하지않다. 근거도 불충분해. 찾을 길이 없기 때문이다. 수치로 잴 수 있는 증거들. 다시말해 확실한 것들이 지닌 속성위에 근거들을 억지로 모아본다면 '얼마 기간의 백수, 몇 권의 책, 몇 편의 영화와 예금 잔고' 따위이다. 이것들을 좋고, 싫은 느낌대로 분류하면 나의 좌절에 대한 이유가 밝혀질까?
아니 좌절이라고 나에게 지시하는 주체가 '내'가 맞는 걸까?
적극적으로 사는 삶에 대한 태도가 있어. '너 잘 살고 있니? 잘 사니? 잘 지내?' 이런 인사치례를 듣곤 하면 늘 그렇듯, '어 그럭저럭, 어 뭐 그렇치' 라고 기계적으로 대답하곤 하는 데 이게 정말 내가 하는 말일까? 사회적으로 통념상 주고 받는 말같아서 낯설고 어색하더라고.
적극적으로 사는 것이 그렇다고 루저근성에 반댓말은 아니겠지. 그냥 살아있으니까 사는 것 뿐이야. 그렇잖아. 뭐 돈을 위해 살거나 신념을 위해서거나 적극성은 없어서는 안되겠지.
하지만 오랜 세월을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고 반대에도 뜻을 굽히지않은 사람들을 접하면 그들의 미래가 괜찮게 보이기까지해. 최소한 결실을 볼 거라는 거. 그 결실로 말미암아 마지막 순간이 찾아올 때 그가 남긴 것들이 그 누군가가 이어받을 거라는 거.
그가 남기고 간 것들이 존재감으로 드러나고 바로 그가 증명될 것이라는 거지. 현재는 알 수 없는 거야. 예를 들어 평생을 아나키한 삶을 사는 사람이 받은 어려움과 고통이 없을 수 없는데 그런 그가 어떤 사람인지는 현재싯점으론 명확하지 않지. 착한 사람? 아나키한 사람? 문화적인 사람? 사기꾼?
언젠가는 자기를 부정하거나 역행할 수 있을 가능성? '미래'를 알 수 없기 때문이 하는 말이 아니야. 오히려 미래보단 현재를 알 수 없어. 현재가 불확실하고 불명확해.
살아있으니까 사는 거야. 사는 건 그냥 사는 것이 아니지. 인간이 사는 삶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로 지적인, 정신적인, 영적인, .... 문화적이고 창의적인 뭐 그러니까 인류학적인 관점에서 인간 활동의 다양성이 종류별로 각 사람 모두에게 마치 칩처럼 조금씩 내장돼있다. 거지든 아프리카 미개인이든.. 뭐든..
이런 보편성을 배제하는 것들에 저항하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들어내는 사람들이 있어. 인간사회가 사람들을 좀 먹는 건 확실하지. 적극성이 필요해. 그렇게 사는 거야. 어쩔수 없이..이렇게 사는 게 잘 사는 거란 말이다. 그리고 현재가 불확실 하게 보이고 원인을 찾을 수 없는 이유는 인간이 지닌 보편적으로 부여된 가능성이(다양성) 사회적으로 규제받고 억압하기 때문이고 (당신이 잘 발달 된 특징들이 당신이 원하는 거야?) 현재를 살아가려고 자기 자신이 근본적으로 해야할 것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야. 방해받지. 방해하는 세상. 마치 안개 낀 장충당 공원을 휘휘 저으며 걷는 병신같은 모습인데 사람들은 이게 정상적이고 당연한 삶이라고 얘기들 하지. 그렇게 못살면 실패한거라고 까지 하잖아?
웃끼지..웃껴.
현재가 불확실하게만 보인다는 모순적인 생각, 삶이 실패했다고 생각하는 기준은 한마디로 타자화되있다는 거지. 자신과는 상관없는 이야기이야. 내가 왜 절망해야하는 건데? 아무것도 하지않는 것이야 말로 죄악이나 마찬가지이지. 알면서 하지않은 것 말이야. 기만적인 것은 조종당하는 삶여서 안타깝다.
현재싯점으로도 어떤 인간인건지 불분명하다는 말은 지금 세상을 뭐라고 규정할 수 없기 때문이야. 늘 변한다는 얘기가 아니라, 이런 세상으로부터 영향받지 않은 인간이 누가 있겠어. 조금 덜 받고 많이 받고의 차이겠지. 누구나 지금 영향아래 살고 있잖아. 그래서 그래.
[monolog] - 나를 방해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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